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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최지송 | 기사입력 2018/10/06 [20:21]

담쟁이

최지송 | 입력 : 2018/10/06 [20:21]

▲     © 최지송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 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도종환>

 

▲     ©최지송

 

▲     © 최지송

 

▲     © 최지송

 

▲      '담쟁이 흡착근'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 최지송  

 

바싹 마른 줄기로 담벼락에 붙어있는 담쟁이는 죽어서도 살아있는 것 같다. 죽은 이의 심장을 이어 받듯 마른 줄기 사이로 여린 새순이 기어 오른다. 솜씨 좋은 예술가의 작품 앞에 서있는 기분이 든다. 시인의 말처럼 담쟁이는 어떻게 물 한 방울 없는 절망의 벽에서 그토록 푸르게 살 수 있는 걸까. 마지막 사진 속에 답이 있다. 

 

사진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꽃샘추위가 서성이던 이른 봄 날이었다. 지난 가을 연지색 담쟁이 넝쿨로 덮여 있던 그 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콘크리트 벽에는 가을에 보았던 고운 담쟁이 잎 대신 거칠고 매마른 회색 줄기가 얼기설기 엉켜서 뻗어 있었다. 나는 마른 줄기들 사이에서 작은 점들을 보았다. 그것은 낙지의 빨판 같은 담쟁이의 흡착근이었다. 담쟁이의 덩굴손은 잎과 마주나고 갈라져서 끝에 둥근 흡작근이 생긴다. 흡착근은 한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잎과 줄기가 떨어져도 흡착근은 그대로 남아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담쟁이 발자국 같다고 생각했다. 

 

간혹 고속도로의 방음벽을 장악한 거대한 담쟁이 벽을 보면 그 생명력에 장엄함을 느낀다.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 사람들은 그것을 담쟁이라 부른다.

글,사진: 최지송

촬영장소: 광주시 곤지암읍 도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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